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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번째 서평]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10월 4번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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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번째 서평]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10월 4번째]

johnna_endure 2019. 12. 4. 13:14

인풋만으로 아웃풋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인풋의 양이 많더라도 추상화와 구조화를 할 수 없으면 '만물박사'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황에 따라 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유연한 지식 운용은 어렵다. 또 추상화와 구조화에 성공하더라도 그 내용을 효율적으로 정리 및 축적해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끌어내 사용할 수 없다면 역시 지적 전투력의 향상은 불가능하다.

이 책 전체의 내용을 압축해 담은 문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학의 기술은 기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특히 감명 깊었다. 그래서 이후로 블로그에 적극적으로 배운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인풋은 아웃풋이 필요할 때 닥쳐서 하면된다' 거나 '아웃풋의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인풋은 비효율적이다' 라는 것은 심한 오해이며, 별다른 목적 없이 오로지 흥미만으로 인풋에 열중하는 시기가 없으면 진정으로 강력하고 독특한 지적 전투력을 익힐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 닥쳐서 하면 된다에 대한 비판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인풋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였다. 공부에 관해 흥미라는 부분을 과소평가해오지는 않았나 반성했다.


강한 애정은 강한 부정과 종이 한장 차이이고, 양쪽 모두 심리학적으로 전이가 발생하는 상태라고 말한 바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강한 반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때 그 정보는 사실 우리 안의 무엇인가와 공명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것을 묻는 편이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으로 파고들 수 있다고 한다.
좋아하는 쪽의 편향된 방식의 학습을 주의하라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는데, 내안의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해주었다.


깊이와 넓이는 서로 대립한다. 깊고 넓게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내가 빠진 함정이지 않았나 싶다. 욕심이 너무 그득했다. 시간은 한정돼있고, 한계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영역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깊은 '지식'을 가졌는데, 그 지식이 다른 분야의 '지혜'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기억하고 있는 지식을 추상화하지 않고 통째로 외운 사람이다. 추상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상황에서 응용할 수 없다.
진정한 지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진정한 지성은 좀 더 유연한 것이어야만 한다.
전문가라는 것은 과거에 축적을 잔뜩 해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가 극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즉, 항상 '미증유의 사태'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과거의 축적에 정통한 사람에게 의존할 수 있을까?

정말 좋은 말이다. 단순한 지식의 축적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선 힘을 잃는다. 지식을 넘어서고 관통하는 통찰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역시 무의식 중 지식의 축적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중요한 것은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의심해야 할 상식'을 가려내는 선구안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구안을 부여해주는 것이 바로 풍부한 지식 축적이다.

이 부분에선 깊은 공감을 했다. 생각해오던 것이었지만 언어로 구체화되진 않아 막연했는데, 이 글귀를 보고 명확해졌다.


책은 텍스트가 들어간 노트다.
적어 넣는 데서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

앞으로 더 밑줄치고, 더 메모하며 읽도록 하자.


교양과 관련된 독서에서 중요한 건 옮겨 적을 때 반드시 비지니스나 실행활에 대한 '시사점'을 기록해두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에도 '아, 재미있었다'가 끝이라면 의미가 없다.
책을 읽은 후 재밌었다고 생각한다면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좀 더 파고들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뜨끔한 부분이다.


현대인의 상당수는 지금 이 순간에 세계의 상황을 전제로 하여 그 안에서 '얼마나 공리적으로 움직이는가' 라는 문제의식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른바 엘리트라는 사람들은 세상의 존재 상태에 대해 그 옳고 그름을 묻지 않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결론지은 후 자신을 바꾸려는 접근 방법을 취하기 쉽다. 그런 끝에 순주롭게 고소득과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쟁취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승리자들'이라 불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그들이 했던 길을 따라 계속해서 노력을 쌓는 또 다른 사람들이 대량으로 출현하게 된다.

얼마나 공리적으로 움직이는가? 라는 물음이 감명깊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리적으로 움직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 성공해서 닦아 놓은 길을 일률적으로 따라간다. 성공하기 위해서 그 다수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가? 그건 3자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자신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 '역사를 알고 있다'라는 것은 중요한 핵심이 된다.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적 원점 회귀'를 반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고 한다면, 역사를 모른다면 어떤 '원점'으로 회귀해야 할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나선형으로 '발전적 원점 회귀'를 반복하면서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서 어떤 '원점'이 부활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 >원서를 요약한 아무리 읽어도 경영학과 관련된 지적 전투력은 높아지지 않는다. 고전이나 원전을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고, 저자의 사고 프로세스를 받아들임으로써 경영의 사고방식을 감각으로 배워나가는 것이야말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요약판이나 해설서라는 것은 이 사고의 프로세스를 생략하고 프레임워크나 키워드만소개하고 있는 것이라 그런 지식을 아무리 기억한다고 해도 지적 체력은 향상될 수 없다.

정말 뼈때리는 이야기다. 어려운 주제의 책같은 경우 원서는 양도 많고, 읽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정공법이 아닌 지름길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이야기다. 물론 해설서나 요약판의 쓸모가 없다고는 생각치 않지만, 결국엔 원서나 본류가 되는 지식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에는 나도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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